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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흑/샘플] 판타지~과거(동양)

몽상누리 2016. 1. 21. 18:20

사람들이 모여 있던 마을 중심부는 마을 내에서도 굳이 꼽자면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인적이 드문 북쪽으로 침입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그렇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쿠로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침입자의 정체를 추측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때였다.

 

“쿠로코 님, 조심하십시오!”

 

쿠로코의 앞에 낯선 동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늑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고, 개라고 하기에는 큰 동물. 날렵한 몸을 가진, 검은 털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넓은 풀숲 가운데에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쿠로코의 주변을 감싸고 선 청년들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댔다. 그런 청년들의 모습을 본 쿠로코는 작은 식신들을 여러 명 형체화 시켰다.

 

“저건 그냥 짐승이 아닙니다. 요괴에요. 섣불리 달려들다간 다칠 수 있으니 물러나세요.”

“하지만 쿠로코 님…!”

“괜찮습니다. 물러나주세요.”

 

일곱 살 어린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쿠로코 테츠야라는 존재였다. 결국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청년들은 뒤로 물러나 쿠로코의 식신들의 보호 아래로 몸을 피했다. 쿠로코는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한 번 청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제가 공격을 받아도 결계에서 빠져나오지 말 것, 그리고 만약 제가 쓰러졌을 경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 것을.

 

“하지만…”

“하지만은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쿠로코는 뒤를 돌았다. 등 뒤에서 청년들이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이내 쿠로코는 결계를 이용해 소리까지 차단해버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것이라곤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쿠로코는 곧은 시선으로, 제 앞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요괴를 바라보았다. 요괴는 일반적인 동물과 달랐다.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급 요괴는 인간으로 모습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비록 많은 요괴를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쿠로코는 제 앞에 있는 요괴가 꽤나 상급에 속한 이라는 것을 판단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이성을 잃은, 짐승의 모습으로 울부짖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쿠로코는 제 앞의 요괴가 꽤나 많은 상처를 입었음을 발견했다. 목숨이 위험할 만큼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해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상당할 터였다.

쿠로코는 공격에 대비해 손에 모아두었던 힘을 흐트러트렸다. 여기에 자신이 공격을 해봤자 살생을 저지르는 꼴 밖에 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었다. 아예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는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하지 말아야 겠다 마음먹은 것은 제 앞의 요괴가 저를 노려보기만 할 뿐, 공격하려는 태세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쿠로코 테츠야라고 합니다. 이 마을의 신관 직을 맡고 있습니다.”

 

때 아닌 자기소개였다. 결계 안에서 쿠로코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청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그렇지만 쿠로코는 태평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매서운 맹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요괴에게 사람 대하듯 말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 쿠로코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쿠로코의 말에 요괴는 으르렁거릴 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이성이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쿠로코를 노려보는 눈에는 경계심과 광기가 가득했다. 그에 더해, 요괴의 눈빛이 점점 흉폭함을 더해갔다. 그러나 쿠로코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여 봤자 공격당할 뿐이다. 쿠로코는 뒷걸음질 치는 대신, 천천히 앞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움칠, 요괴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쿠로코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느낀 것인지 대번에 덤비지는 않았다.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쿠로코가 제가 쉽게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성을 잃은 요괴에게 남아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뿐이었으니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당신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쿠로코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요괴의 귀에 쿠로코의 말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쿠로코의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다 판단한 것인지, 그대로 다가오는 쿠로코에게 급작스레 달려들었으니. 제게 달려드는 요괴를 피해, 쿠로코는 몸을 모로 틀었다. 그러나 역시 요괴의 속도가 더 빨랐던 모양이었다. 요괴가 쿠로코의 어깨를 스치는 순간,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쿠로코 님!!”

 

결계 안의 사람들이 쿠로코의 이름을 불렀지만 쿠로코에게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알싸하게 아파오는 제 팔을 붙잡으며 다시 요괴와 눈을 맞추려 시도할 뿐이었다. 다행히 급소를 베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큰 문제는 없었다. 쿠로코는 제 흰 기모노 자락이 붉은 피로 물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시 한 번 요괴를 향해 한 발짝을 더 떼었다.